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하박국3:16-19 09.8.30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감사하기가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는데, 정직하게 살아가는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억울한 일은 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 잘되는 것 같고, 못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축복 받는 것 같이 보여질 때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 속에 감사하고 살아가기가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시편73편에 보면 시편기자가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다가 시험들 뻔했고 미끄러질 뻔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을 때도 고통이 없어 보이고, 힘이 넘치는 것 같이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 다 당하는 고난도 재앙도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는 일을 보면 악인같이 보이는데, 너무 일들이 잘되고 어려움이 없어서 교만이 목걸이고 남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겉옷처럼 보였습니다. 분명 악한 계획인데도 그것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 같이 보이니까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엎드려 하나님앞에 기도하다가 보니까 괴롭던 마음이 풀려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형통이 지금은 형통인 것 같이 보였는데, 성전에서 보니까 그것은 형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의 눈에도 세상이 그렇게 비추어져 있습니다. 합1장 2-4절입니다. 세상의 차별과 불공평은 만연하여 폭력적인 세상이 되었고 윤리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법대로 되어지는 일도 없으며 악인은 잘되고 의인은 도리어 안 되는 착하게 살려하면 늘 악한 자들에게 사기 당하는 세상, 이런 왜곡됨은 선지자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정치적인 타락, 종교지도자의 타락은 유다의 운명을 풍전등화처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따지듯이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두시는 것입니까? 하박국은 상황을 보고 질문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외쳐지는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1장5-11절에서 첫 질문에 답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사납고 성급한 잔인한 갈대아 사람 즉 이방민족 바벨론을 일으켜 심판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박국은 더욱 긴장합니다.
1장12 - 2:1절에서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는데 악한 자를 사용하시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2:2-4까지 간접적인 응답을 주십니다. 4절이 그 핵심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면서 모든 불의에 대해2:5-20절까지 5가지 하나님의 저주가 선포됩니다. 이에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이라 할지라도 3장에서는 자신에게 응답주신 하나님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하며 큰 변화를 가진 하박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분명 하박국은 변해있습니다. 하박국의 마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신앙고백이 쏫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두려움으로 눈물 흘리면서 하는 감격의 고백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그 고백의 내용인즉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
이 내용에 흐르는 하박국의 감정은 분명 감격하는 감사입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감사 이것은 믿음이 없이는 고백하기 힘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 못할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에는 3가지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1. 주신 것으로 인한 감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좋은 가정주시고, 좋은 부모주시고, 좋은 형제들 주시고, 좋은 이웃들을 주시고, 좋은 집 주시고, 좋은 직장주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감사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신 것,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없는 것 만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자기생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불공평을 바라보고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쳤을 때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했던 사람은 딱 한사람이었던 것을 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을 때 주님은 주신 것으로 인하여도 감사하지 안는 사람들을 보시고 한탄하셨던 것을 봅니다. 고쳐주신 것, 은혜주신 것으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로 인하여 감사하는 성도들의 신앙은 참 고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불평하게 만듭니까? 무엇이 여러분에게 괴로움을 가져다 줍니까? 무엇이 여러분에게 분을 가져다 줍니까? 남들하고 비교해봐서 남들은 있는데, 나에게 없는 것을 인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한다고 했는데, 그 땀흘린 결과를 보지 못해서 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에게 무엇인 있는지를 보시길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세어보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489장에 보면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그렇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시길 바랍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들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그러고 나면 모든 원망도, 불평도, 시름도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를 다쳐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시를 쓰고 그 시는 또 곡을 붙여서 수많은 복음성가로 다시 태어 나게 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곡이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내용을 보면 참 은혜를 받습니다.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걸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걸 갖게 하셨네” 자신의 삶의 모습, 인생만을 처다 보고 있었다면 그는 한없이 불행하고 자기에게 이런 불행의 삶을 준 그 의사가 한없이 원망스러울 것인데, 그가 자신의 환경을 처다 보지 않고 하나님을 처다 보게 되니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을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환경에,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하여 감사가 끊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주실 것을 믿고 감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이 믿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입니다. 지금은 없는데, 앞으로 주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리 하는 감사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는 감사입니다. 앞으로 주실 주님을 분명히 믿고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손에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원망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때에 믿음을 가지고 미리 감사하는 신앙은 고귀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업을 벌려놓고 지금은 잘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를 드리시는 분들도 있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얼마정도의 수입을 주실 것을 믿고 그 액수에 맞게 미리 예물을 드리시는 분들도 봤습니다. 참 대단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미리 감사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 믿음은 히브리서 11:6절의 말씀처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 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어느 믿음의 가정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 1993년 1월 30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암흑의 날이었다. 우리 집의 하나뿐인 아들, 동생 안성이가 입대한 지 3주만에 헬리콥터로 후송되어 군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급성 백혈병에 폐렴까지 겹쳐 생명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왜 이런일이.... 하나님 무엇이 잘못된 거죠?
생각할수록 믿겨지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하나님께 이 일을 아뢰며 울부짖을 때 심령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평안과 함께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3)라는 말씀이 다가왔다.
교회의 온 성도와 기도의 동역자들, 군병원의 형제들과 우리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합심하여 기도 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관들로부터 최선을 다 했지만... 이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믿음으로 버텨오시던 부모님은 절망을 하시게 되었고 우리의 믿음은 결국 한계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동생의 생명이 거의 다할 때 우린 목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친 뒤 성전으로 달려가 나는 외쳤다.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 동생의 영혼을 거두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까? 라고.
그날 저녁 우리의 소유로 여겼던 동생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드리며 예배를 드릴 때 비로소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동생을 건져내시는 기적을 행해 주셨다.“
여러분 이분들의 믿음이 바로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님께 자신들의 생명을 맡기고 주님이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드렸을 때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축복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감사하는 믿음은 정말로 우리의 믿음 속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가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3. 없을지라도 의 감사.
그러나 우리가 그 보다더 성숙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거절당했을 때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 진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로 요구되어지는 믿음의 감사는 거절당했을 때에도 그것으로 인하여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바로 그 고백입니다. 비록 내가 원하고 기도하던, 무화과나무의 무성함과 포도나무의 열매와 감람나무의 소출, 그리고 외양간송아지, 이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신앙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했을 때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할 때에 이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헛된 것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들어갈 천국을 바라본 성도들에게는 이땅의 모든 것은 하나도 미련이 남지 않습니다. 이 땅의 것이 거절되었다고, 그것으로 인하여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늘 바라본 성도들은 땅의 것으로 인하여 연연하지 않습니다. 땅의 것이 거절되었다고 그것 때문에 고통하지 않습니다. 사실 땅의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있으면 편리한 것뿐이고, 없으면 간편한 것입니다. 심플하게 살면 됩니다. 하박국이 이야기하고 있는 무화과나무, 포도열매, 감람나무, 외양간송아지, 이모든 것은 땅의 것이지 하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그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전에 절을 하지 않으면 불무불에 던져 넣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던 세친구가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에게 타협안을 내어놓습니다. 이제라도 나팔소리 들리면 그 금신상에 절을 해라 그러면 용서해주겠다는 타협안이었습니다. 그때에 그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가 고백했던 말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다니엘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로다. 여기까지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되어질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더 놀라는 고백을 듣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놀라운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거절된다해도,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은혜만으로도 족합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 저 천국에서 기다리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라는 믿음입니다. 자기를 향하여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도 저 천국에서 서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의 삶이 거절당했지만, 하늘에서 함께 살자며 저 천성에서 일어서서 자신을 기다리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들어간 스테반집사의 그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이지 않습니까?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은혜의 대한 감격은 우리를 이렇게 수준 높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해줍니다.
이땅의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그 구원의 감격 속에 다시 우리가 뛰어들 때에 우리의 삶에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하는 수준입니까? 아니면 소망 중에 바라는 믿음의 감사입니까? 아니면 거절당해도 날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속에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장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의 성장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은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우리 안에 잊혀지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기쁨이 없으면 우리는 하늘을 처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이 땅의 것에 머물려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의 은혜를 맛보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은혜 받고, 하늘의 은혜를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말씀처럼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라는 것처럼 우리가 하늘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것에 미련 갖지 않고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설사 나에게는 남들이 누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그리고 내일 주님 품에 갈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날 구원해주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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