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일을 행하리라. 이사야43:18-21 10.1.24
아이티의 대지진이 일어난 후 벌써 2주간이 되어갑니다. 여전히 고통받는 현장들이 TV화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보면서 나오는 것은 한숨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왜 하필이면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에 저런 아픔을 주시는가! 하면서 의문을 같게 됩니다. 그런데, 몇일 전 인터넷에 나온 한 기사를 보면서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와 뉴욕타임지의 인터뷰내용을 기사화한 내용입니다. 그 기사의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그대로 소개를 합니다.
아이티 지진 참사 일주일째. 돌과 벽돌, 깨진 병 등을 집어 던지며 구호 지연에 항의하는 시위가 포르토프랭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위 소리에 가려져 들릴 듯 말듯 한 북소리가 무너져내려 버린 한 성당으로부터 조용히 퍼져 나간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할 사람들을 모으는 이곳 에릭 뚜생 주교의 외침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극도의 상실감과 불안,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을 아이티인들의 마음을 마치 모두 이해한다는 듯. 강진으로 순식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의 터전, 꿈꿨던 미래를 잃어버린 아이티인들의 아픔을 현지 교회가 함께 하고 있다. 물과 음식, 약품, 옷과 텐트 등 당장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 물품이지만 “정부는 우릴 버렸다, 유엔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부르짖는 절규에는 아픔을 함께 할 대상에 대한 간절한 필요가 배어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교회기에, 음식물 한 줌, 물 한 모금을 차지하려 아귀다툼을 벌이고 흉기를 손에 든 채 약탈에 나서야 하는 형제들에게 당장에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심령 깊은 곳의 아픔과 상처를 교회들이 어루만지고 있다.
1750년에 지어진 포르토프랭스의 가톨릭 대성당. 지금은 지붕도 벽도 없는 폐허로 변한 이 곳에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는 아이티인들의 큰 무리가 눈에 띈다. 기도할 무릎과 두 손밖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이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고 있다. 에릭 뚜생 주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것은 우리를 여기 살아 기도 드리게 하셨기 때문이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품안에 있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며 모여 있는 교인들을 위로했다.
파트 타임 기술자인 조르쥬 베리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하나님도 원하지 않으셨던 일이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을 이었다.
이로부터 멀지 않은 한 복음주의 교회. 역시 폭격이라도 당한 듯 처참한 모습이지만 어느새 교인들이 모여 들었다. 해어진 티셔츠 차림의 조셉 르죈느 목사가 눈이 붉어진 채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곳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해 보라”며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여기는 더 이상 재앙의 현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삶은 재앙이 아니고, 기쁨이다. 음식이 없다면 주님으로 풍족케 하고, 물이 없다면 성령으로 목마름을 채우자”고 교인들의 마음을 일으켰다.
리꼬 깔릭스뜨는 임신 8개월인 그의 아내를 가리키며 “콘크리트 더미가 아내의 배 위로 쏟아졌고 아기가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기도가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아직 숨 쉬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타는 듯한 목을 축일 물도, 일주일째 요동치는 배를 채울 음식도, 피 흘리고 다친 몸을 누일 곳도 없지만, 교인들은 르죈느 목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길거리에 즐비한 시신들이 썩으면서 풍기는 냄새와, 대소변의 악취가 한 데 뒤섞여 숨쉬기조차 힘든 한낮의 포르토프랭스 도심에서 “교회가 물이고, 음식이고, 침실이고 화장실이다. 교회는 지금의 우리다”는 르죈느 목사의 외침에 여기 저기서 “아멘” 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현재 포르토프랭스 곳곳에 있는 교회들에서 이같은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임시 강단이 세워지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소서”라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거대한 재앙 앞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같은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지진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이고 우리를 미워하시는 것”이라며 분노를 표현하는 아이티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고, 가톨릭, 복음주의 교회 등 기독교 신앙이 깊은 아이티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아서 신앙을 통해 고난을 이겨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그 사망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생명의 줄을 믿음의 줄을 놓지 않고 있는 그들의 신앙을 보면서 여전히 예수가 소망이라고 외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멸망 앞에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분은 여전히 여호와 한 분이라는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1. 이전 것은 지나갔다.
이사야선지자는 먼저 오늘본문에서 외치기를 18절에“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전일, 옛적 일들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수많은 기적과 이적의 이야기들입니다.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해서 가나안의 점령에 이르기까지 승리의 역사들 다윗왕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시절과 솔로몬 시절의 가장 부강했 을때의 영광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라는 점점 힘을 잃고 주변국가에 대해서 수많은 약탈과 침략을 받은 일들, 급기야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해버렸던 비참하고 처참한 인들, 선민이스라엘이 겪었던 온갖 수모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이티가 겪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납니다. 아이티의 역사를 보니까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흑인노예들이 현 아이티 인들의 선조입니다. 처음에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으나, 나중에 프랑스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04년 1월 1일 흑인노예들의 혁명으로 당시 나폴레옹 황제가 지배하던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아메리카에서는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독립하였으며, 세계 최초로 흑인노예들에 의해 주도된 민중혁명과 헌법에 의해 수립된 흑인 공화국입니다. 얼마나 자존감이 강했고,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나라는 후에 오랜 독재자에 의해서 혼란의 역사 속에 아프리카 중에 최빈민국으로 전락했고, 이번에는 대지진으로 국민의 3분의1의 사상자를 내는 피참한 현실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과거의 화려했던 일들도, 그리고 비참했던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이제 그런 과거의 일들을 기억지도 생각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이루어지게 될 미래라는 것입니다.
한국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나라였습니다. 불과 60년전에,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리더로 더듭 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일본의 한신대지진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난 우리가 살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과거를 자꾸만 생각하고 그곳에 억매어 있으면 안됩니다. 한때 성공했던 사람들, 잘나가던 사람들이 실패하면 그 실패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을 허비하고, 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어떤 기억이 있습니까!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화려했던 기억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과거의 비참하고 힘겨웠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기억하지 말라, 생각하지 말라.” 고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오늘이라는 현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못하게 합니다.
2. 내가 새일을 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오늘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으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새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십니까! 하나님은 불행과 고통을 다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은 놀라운 일로 변화가 되어집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기사의 내용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많은 목사들이 슬픔속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망가지고, 부서져도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토기장이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18장에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주전 586년을 전후하여 약 40년 동안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눈물의 호소와 애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의 40년의 섬김과 사역은 눈물뿐인 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였고, 실망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힘은 이제 없어졌고, 그의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조국의 멸망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을 때 마침 토기장이는 발로 움직이는 회전용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기장이는 그가 정성을 모아 만든 진흙을 회전 녹로 위에 올려놓고, 그릇을 빚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것을 부수고 다시 그가 원하는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바로 그때, 이런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희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고, 그래서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 더욱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주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먼저 멸망을 당하고, 그 후에 주전 586년에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들에게는 참으로 비극이요, 절망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드셨고,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지도자들을 세워 그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귀환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더욱 거룩한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들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드시고, 그들을 더욱 거룩하고 귀한 그릇으로 빚으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여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19,20)에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편과 사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할 지라고, 여러분의 사업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속에 놓여진다 할지라도 그 모든 상황들을 내가 붙잡고 있으면 정말로 절망이겠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다고 한다면 희망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환경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마치 어린 소년이 자기가 먹으려고 가져왔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예수님의 손에 올려지고, 주님이 축사를 하시니까,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처럼, 바로 여러분이 그런 주인공들이 되어질 것입니다.
3.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새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주십니까!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는 모습,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 새역사를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이티의 그 폐허 속에서도 다 무너진 교회에서도 지금 그들은 신음소리가 아니라 찬송을 하고 있는 거룩한 이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진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그 고백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도 이제 수많은 간증들이 쏟아지고 있고, 기적의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이제 그 민족이 이 슬픔을 이겨내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이티에 기적을 이룰 날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모습 속에 올 한해동안 이런 찬송이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속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일들, 지난 기억들에 얽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은 광야40년의 세월을 잊지 못하게 유월절을 제정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잊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얽매는 모든 것을 잊으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성도들에게 이야기 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앞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과거의 실패와 잘못들, 그리고 경험들도 새로운 것을 위해서는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영광을 위해서 사도바울처럼 앞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교회현관에 아이티를 위한 구제헌금함을 마련해놓았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을 바랍니다. 이 구제헌금은 교단으로 보내지고, 교단에서는 일본NCC를 통해서 아이티에 보내지게 됩니다.
우리의 적은 정성이 아이티의 오늘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재건의 역사를 이루는데 조그마하게라도 쓰임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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