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을 도우시는 주 로마서8:26-30 2010.1.31
지난주 한국기독실업인회 동경지회를 설립한다고 해서 교회성도 몇 분이랑 다녀왔습니다. 행사를 하는 중에 주일한국대사께서 축사를 하셨는데, 그 내용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신은 대사가 되기 전에 국회의원을 몇 년을 했는데, 선거운동을 할 때마다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선거자금이 없었는데, 자금이 어디서 들어오면 그 돈을 집에다가 잘 보관해두고 나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돈이 집에 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안심이 안되더랍니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다말고 집에 꼭 들어와서 그 돈이 잘있는가! 를 확인하고서야 다시 선거운동을 나가곤 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경에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느니라” 라는 성경말씀이 생각이 나면서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졌더랍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자신의 물질을 하늘에 두기 시작했더랍니다. 그러면 자기의 마음도 하늘에 있게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고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약한 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이 돈에 약한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 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축사를 했던 일본인 목사이기도 하면서 민주당 국회의원인 도이 류이치 의원 역시 자신은 한가지 중한 병이 걸렸는데, 그것은 누구에게 부탁이 오면 거절을 못하는 병이 걸렸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도이 류이치 의원은 한국 선교사들의 모임들이나, 이런, 저런 모임에서 굉장히 얼굴을 많이 봅니다. 아마도 수많은 부탁들을 거절을 하지 못하고 전부 소화를 하다보니 자신도 힘이 들지만, 이런, 저런 집회에 참석을 하는 사람 역시, 가는 곳마다, 그분을 볼 수 있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약하십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한 것 인줄로 믿습니다.
1. 약함을 도우시는 주님
성경에서 인간은 연약한 존재로고 말합니다.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히 5:2) 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에스겔 15장에서는 연약하고 쓸모 없는 우리의 모습을 포도나무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겔 15:2,3) 너무 연약한 나무라서 제조에도 쓸모 없고, 가벼운 것을 걸 못조차 만들 수 없는, 결코 재목이 될 수 없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청춘남녀가 결혼을 할 때 보면 어떤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잘사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통적인 면들이 있는데, 보통 여성들에게는 모성애의 발동이 계기가 되고, 남성들에게는 보호본능이 계기가 되어서 결혼을 한 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결혼을 하려면 여자는 남자들이 보호해주고 싶어하는 “보호본능”을 자극시키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자 앞에서 강한척하면 안됩니다. 능력 있는 척을 하면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약한 척도 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척을 해야 남자들이 그 앞에서 잘난척하고 싶어하고, 그런 일들이 발전하면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는 모성애가 있기 때문에 이런 모성애를 자극시키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척해야 합니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는 것 같고, 옷도 제대로 못챙겨 입는 것 같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모성애는 발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역시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약한 점을 누구에게 보이기가 싫어서 일부러 강한척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손해를 보는 일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흠이 아닙니다. 우리의 약함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 약한 부분은 도와주시는 분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그런 약한 부분을 도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를 도우시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그럼 성령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까!
2.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 하시는 성령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해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든지, 기도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당신이 다 알아서 우리를 도와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인격을, 우리의 간구를,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6장에 보면 37절에 보면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 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그런데,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미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계획을 다 짯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우리가 달라고 기도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우리의 필요에 대한 의지와 요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 때보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는데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부인은 아주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가게 주인이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서 기도밖에는 정말 아무 것도 해 드릴 것이 없다" 면서 배고픈 어린 아이들을 봐서라도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불만스런 가게 주인은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 주세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기도를 쓴다고 할지라도 종이 몇장이 얼마나 무게가 나가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부인은 접혀진 노트를 주머니에서 꺼내면서 그 주인에게 건내 줍니다.
"우리 어린애가 지난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면서 기도를 적어 둔 겁니다!" 그러면서 전해 주었습니다.
이 주인은 그 기도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 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 그러면서 저울의 눈금을 바라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빵 한 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놓았는데도 저울은 이상하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더욱 당황해 하면서 다른 물건들을 더 올려 놓았습니다. 이제는 저울에 더 이상 물건을 올려놓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주인은 "어서 이 물건을 봉지에 담아 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그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몇 번이고 감사하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가게 주인이 알아보니까, 저울이 고장이 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 이 주인은 가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어떻게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 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났을 때 찾아 왔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많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주님은 때로는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바꾸실 때도 있습니다. 내 생각은 이런 생각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막상 기도의 입을 열었을 때는 내 생각과 다른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보신 적이 있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구하려고 할 때에 그것을 바로 고쳐주시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기도를 많이 했고,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북 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병사가 죽어갈 때마다 동족을 잃는 쓰라린 아픔을 안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끄는 북군은 병사의 숫자가 많고 또 여러 가지 여건상으로 보아 다 유리했지만 남군의 용장 로버트 리 장군 때문에 늘 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위로했습니다. 한 교회 대표가 링컨에서 다가와 말했습니다. "각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북군의 편이 되셔서 북군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우리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는 기도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편이 되게 하기 위한 기도인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고 하십니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
그리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것들을 어질러 놓는 것을 잘합니다.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일을 잘 벌려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약점은 한가지 일을 끝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뒤치다꺼리를 잘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일을 벌리는 사람과 그것을 정리해주는 사람이 한팀이 되어지면 환상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든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저것을 못하고, 여기 저기 벌려놓는 것만 잘하고, 정리를 못하는 사람, 정리는 잘하는데, 일을 찾아서 하지는 못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조화를 잘 이루면 놀라운 공동체가 되어집니다.
우리교회안에서도 사람들마다 달란트들이 다 다릅니다. 서로들 장점이 있고 단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점들을 잘 모아서 조화를 이루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로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바로 이렇게 조화를 시키는 사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사역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고백입니다. 내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이 연약함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고백을 하지 않고, 내 생각은 언제나 바르다고 생각하고, 내가 결정한 것은 언제나 맞다고 생각하고, 늘 상대방에게 문제를 돌리는 사람에게는 합력 하여 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한번생각을 바꿀 줄을 모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생각한대로, 결정한대로 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내 결정에 동의를 해주어야 하고, 내 결정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늘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것은 성령님께서 바꾸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새롭게 재조화를 이루기도 하시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니까! 합력 하여 선이 이루어진 것을 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동남부에 땅콩의 생산지로 이름난 알라바마라는 주가 있다. 그 주에 있는 어떤 마을에 가면 이상한 기념탑이 서 있다. 목화를 갉아먹는 벌레들을 위해서 세운 공적비라고 합니다. 그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우리는 우리들에게 번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또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우리는 다시 한번 그대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참으로 이상한 비문이 아닙니까? 세상을 위해서 공덕을 세운 사람을 위한 공적비가 아니라 목화를 못쓰게 만들었던 목화 벌레를 위한 공적비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본래 알라바마주는 목화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알라바마주로 모일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벌레들이 나타나서 목화들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농사는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일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제각기 보따리를 싸들고 다른 주로 이사를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도 역시 어디에서 날아 왔는지 목화 벌레들 때문에 손을 쓰지도 못하고 농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점점 어려워지고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고 감정마저 악화되어 살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살고 있는 주민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성서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반드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자기들에게 그와 같은 시련을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머금고 수십년 동안 일구어 왔던 목화밭을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그 대신 한번 도 가꾸어 보지 않았던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땅콩 산지를 만들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수십년 동안 재배하던 목화를 뽑아버리고 땅콩을 심었던 그 무렵 화학 섬유가 개발되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질 좋고 값싼 나일론으로 만든 인조 옷감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값이 비싼 목화로 만든 무명 옷감은 팔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주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알라바마주는 목화 벌레들 때문에 일찌감치 땅콩으로 전업한 결과 저들은 번영의 길을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목화 벌레에 대해 감사의 뜻으로 공적비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강한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있는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는 척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 그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게 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이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잘못기도하면 그 기도의 내용을 바꾸어주셔서라도, 그리고 우리가 이것, 저것 뒤 썩여 버린 것 같은 일이 있다할지라도 그것들을 다시 조화롭게 만들어주셔서 즉 합력 하여서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로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하시길 바랍니다. 순수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 볼 수 있고,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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