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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영의 눈을 떠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자! 눅24:13-27

영의 눈을 떠서 부활을 주님을 만나자!               누가24:13-27                   10.4.4  부활주일

 

할렐루야! 오늘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인사합시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양쪽에서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하나님 이 전쟁에서 꼭 이기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전쟁에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그 전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전쟁터에 목사들을 많이 파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장례를 집행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때에 파견되어 갔던 목사 중에 “밥 로우리” 라는 분이 파견되어 갔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서 하루에도 수십건씩의 장례를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부상자들이 너무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손도 부족해서 결국 잠시 후에는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목사까운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자는 죽은 자요 지금은 산 자부터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는 일에 힘을 다했습니다. 부상자를 옮기고 상처를 치료하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까 끼니도 거르게 되고, 몸이 지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러진 그를 누군가가 죽은 줄 알고 들것에 실어다가 시체 더미 위에 던져 버렸습니다. 죽은 것이 아닌데, 로우리 목사는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싸늘해진 시체더미 가운데서 자신의 몸도 차가워지고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팔이 자신의 몸 위에, 죽은 자의 다리가 자신의 몸을 누루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밀쳐내고 일어나야 하는데, 도무지 힘이 없었습니다.  소리를 낼 힘조차도 없었습니다. 정말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목사지만 지금껏 하지 못했던 간절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하나님 나를 도와 주세요, 이 시체더미에서 일어날 힘을 주세요.”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번도 환상이라고는 보지 못했던 그였는데, 그 앞에 환상이 펼쳐졌습니다.  큰 돌 무덤이 열리면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밥 로우리!, 내가 살았느니라, 밥 이제 내가 살았느니라! 밥 이제 내가 살았느니라!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새로운 힘이 자신에게서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힘을 내어서 자신을 누르고 있는 죽은 자의 팔을 밀어내었습니다. 죽은 자의 다리를 떨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자의 시체더미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주님이 죽음을 이기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때 주어진 영감으로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그 찬송이 우리가 불렀던 150장 ”무덤에 머물러“입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오늘 성경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들 중에 한 장면입니다.
배경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는 낙심되어서 자기의 고향인 엠마오를 향하여 돌아가는 길가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1. 눈이 가리워 진 제자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저희의 눈이 가리워 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이라고 합니다.
예수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데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요 저희들의 눈이 가리워 졋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생활했던 이들입니다. 매일같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생활을 했던 그들인데 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일이 또 한번 있었는데, 언제인가 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를 태워서 먼저 보내시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십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없이 자기들만 배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거쎈 바람이 불어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 그때에 한밤중에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령 인줄 알고 놀랐었습니다. (마14:22-27)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상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마 예수님이 진짜로 부활 하셨으리 라고 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마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기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보고,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듣고,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마17:22-23)고 그렇게 말씀을 했어도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 했던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라고! 하는 마음.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마17:23)에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는 마음속에 안 들리고 죽는다는 이야기만 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릴 때 우리의 믿음의 눈이 감기워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고난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은 우리 속에 비쳐지지 않고 당장 눈앞에 있는 고난 때문에 고통 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뒤에 있을 축복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말고 인간의 몸으로 바다위를 걸었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자마자 그는 물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주님만 바라보고 걸었을 때는 바다 위라도 걸을 수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 닿친 파도를 때문에 갑자기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파도만을 본 것입니다. 그 순간에 그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파도 가 아무리 불어와도 그 뒤에는 여전히 예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로 그 예수님을 바라 볼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영의 눈을 열어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많은 신앙의 간증들을 들으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일어서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설마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면서 스스로 부활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의 눈은 가리워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기십시오. 기도하세요, 그러면 해결될 것입니다. 하면서 이야기를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고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는 마음이 스스로의 눈을 감겨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로 이런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 14~17절에 보면 옛날에 이스라엘과 아람은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아람 왕이 대군대를 준비해서 이스라엘 변경을 침공하면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군대를 준비해 숨어있다가 역습을 하곤 했습니다. 아람 군대는 늘 패전했습니다. 이에 아람 왕이 가슴을 치며 “이 어찌된 일인가, 어찌하여 우리가 계획한대로 군대를 보내면 그 때마다 이스라엘의 왕이 군대를 미리 보내어 길을 막고 있는가, 이는 필경 우리 가운데 스파이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크게 진노했습니다.
아람 왕은 내각을 소집하여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스파이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왕이여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어 그는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가 있어, 그는 육의 눈만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의눈을 열어 주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만 리 밖에 있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왕이 계획하는 모든 것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여 미리 군대를 동원해서 막도록 했습니다. 아람 왕은 신하에게 엘리사를 잡아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부하 중 한 사람이 왕에게 지금 엘리사가 도단성에서 수종 드는 사람과 묵을 것이라는 정보를 알렸습니다. 아람 왕은 최정예 군대를 총동원하여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싸 아침이 되면 습격하여 엘리사를 잡으려 했습니다.
아침 일찍 엘리사의 수종 드는 사람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문 밖을 내다보다가 그만 기겁을 했습니다. 밖에는 성 전체를 아람군대가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의 깃발과 창검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안으로 들어와 이 사실을 엘리사 에게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두려움에 떠는 사환의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두려워 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 아람군대보다 많다”라고 말하며 사환이 영의 눈으로 그 사실을 볼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자 그는 불말 과 불병거가 아람 군대를 에워싸고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람 왕은 군대를 총동원하여 도단성을 포위했지만 결국 엘리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포로가 되어서 사마리아까지 끌려갔습니다.
우리는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사망권세를 이기신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을 볼수가 있스니다.

2. 눈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이때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냐? 는 질문 속에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이야기들을 들어서 이미 예언된 말씀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를 말씀하십니다."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절)하면서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뜨거운 것은 있는데, 이분이 누구인지. 자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이분이 누구인지를 그때까지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미 다 합니다. 22절에서24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 갔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옆에서 자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말씀을 듣는 동안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마음의 뜨거움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는 결정적으로 그들의 눈이 뜨인 것은 어느 때인가 하면 예수님과 함께 식탁을 나눌 때에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그 떡을 받을 때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았다(30절)합니다.
그리고 이 떡을 떼어 축사하시는 모습은 언제 또 있었습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실 때에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사하셨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던 그 모습이 지금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축사하시는 모습. 그 모습은 배고픈 영혼들을 사랑하시던 그때의 그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식탁을 나누면서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떡을 떼어 축사하는 그 모습 속에 그동안 말씀을 들으면서 뜨거웠던 그 말씀이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의 모습을 분명히 바라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약해졌을 때, 문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방황 할 때에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떡을 떼는 것, 즉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식탁을 나누며 예수의 사랑을 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나눌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한순간에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순간에 그동안 희미하게 보이던 것들이 얼굴과 얼굴을 보는 것같이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주님을 만난 성도
이제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는 부활의 주님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33절에 보면 "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라고 합니다. 그들은 "곧 그 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예수와 함께 하던 곳입니다. 즉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들은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낙담 속에서, 옛 장소로 돌아가려던 그들이 다시 은혜의 자리를 향하여 돌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잃어버렸던 성도들은 다시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부활의 증인되었습니다. 34절에" 말하기를 주께서 관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경험한 성도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다시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나가서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것이 진짜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를 믿으면서도 한번도 전도를 해보신 적이 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부터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부활하셨다고 외치고 뛰어 다녔던 여인들처럼, 우리도 뛰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믿는 것이 진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후에 삼일만에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이 바로 옆에서 계셨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슬픔 앞에, 고난 앞에, 설 때마다 그것이 너무 크게 보일 때마다. 잊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 모든 슬픔을, 고난을, 눈물을 치료해주시고, 고쳐주시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당장에 내 고통 때문에 지난날 있었던 수많은 은혜의 날들을 잊어버리고 말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이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달려 계신 십자가가 아니라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그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 무덤에서 나아오신 예수님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희망을 주시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주시고,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담대함을 허락해주신 주님을 깊이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은혜를 회복시켜주시고, 주님과 함께 했던 은혜의 날들을 회복하는 그 시간에 놀라운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무엇도 여러분을 죽음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원한 생명뿐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이제 우리만 소유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아직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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