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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은혜로운 생활 엡425-32

은혜로운 생활            
엡4:25-32                         10.8.1

오늘은 성찬식과 더불어서 학습, 유아세례, 세례식을 갖습니다.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들의 영적인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고,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이들에게는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롭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모습이 은혜로운 모습일까요!
한 심리학자가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어느 동네의 한 구역을 택해서 집집마다 매일 100달러씩 갖다놓은 후 그 결과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하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집어갔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100달러씩 집 앞에 놓고 가는 사람 이야기로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둘째 주쯤 되자 현관 앞에 나와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셋째 주쯤 되자 돈을 받는 것을 이상해 하지 않았고 넷째 주가 되었을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돈을 집어갔습니다. 실험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 학자는 돈을 집 앞에 놓지 않고 그냥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우 불쾌해 하며 “왜 오늘은 안 주고 가느냐?”고 따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베풀었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고 불쾌해 했던 것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은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가져야할 모습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은혜로운 삶을 위한 제안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신바 되었고, 또한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즉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거룩하게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거룩한 삶, 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마음의 은혜
본문 25절에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해라, ”
고 합니다.
거짓과 분, 이런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은혜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오고갑니다.
그러므로 잠언 4:23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고 합니다.
어떤 스승이 바구니 안에 꽃을 담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 이것이 무슨 바구니인가?"  제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 꽃바구니 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꽃을 들어내고  생선을 바구니에 담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 생선 바구니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 맞다. 똑같은 바구니이지만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요, 생선을 담으면 생선 바구니이니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 같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 향기 나는 꽃이 담겨 있으면 향기 나는 사람이니라."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살아갑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거짓과 분노’ 라고 합니다. 거짓은 속이는 것입니다. 속이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그렇지 않는데도 그런 것처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거룩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거룩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은 진실하지 않은 사람인줄을 알면서도 진실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은 깨끗하지 않은 사람인줄 알면서도 깨끗한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온유하지 않으면서도 온유한척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은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는척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모든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부모가 압니다. 아내가, 남편이 압니다. 자식이 압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은혜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짓은 이웃에 대한 거짓입니다. 거짓은 무엇 때문에 하게 되는 것입니까!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위해서 하는 거짓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요즘에는 언제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음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은혜입니다.” 평소에 승부욕이 강해서 매번 교회의 성경퀴즈대회에서 일등을 하는 한 성도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다시 물어봅니다. “아니 회사가 그럴 허락하나요. 사장님이 독실한 크리스찬인가 보군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요즘에는 책상마다 컴퓨터가 있잔아요. 그래서 성경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그냥 읽는 것입니다. 누가 아나요, 열심히 일하는 줄 알겠지요!” 그 성도의 말에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다시 정중하게 말을 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시간은 빼앗지 않으시는 회사의 시간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불법을 은혜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27절에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것, 거짓이, 꼭 나쁜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도 거짓을 틈타게 하면 바로 그것은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한번 우리마음속에 들어오면 안나가려고 합니다. 자리를 틀고 주저앉으려고 합니다. 남들도 다 하는 거짓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만듭니다. 이 정도는 괜찬다 고 말하게 합니다. 한번 마귀가 틈을 타고 앉아버리면 하나가 둘 되고, 둘이 넷 되고, 넷이 여덟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에 몰락시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망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거짓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분노입니다. 분노는 미움입니다. 미움은 증오를 낳습니다. 증오는 결국 죽음을 낳게 됩니다.
이 분노 역시 우리 마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화병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2008년도에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국보1호인 숭례문이 방화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크게 다루어져서 일본에서도 방송을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숭례문을 방화한 사람은 출가한 2남 2녀의 자녀를 둔 조용한 성격의 70세 노인에 의해 소실되었습니다. 방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토지가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시공사로부터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해 그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분노가 쌓이게 되고 그 분노는 결국 파괴적으로 표출되어 숭례문을 사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4장 짜리 편지에 토지보상금 문제, 민원 제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 사회에서 받은 냉대 등의 이야기를 빼곡하게 적었다고 합니다. '억울함을 수 차례 진정했으나 정부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회사 편만 드는 판사는 없어져야 한다', '창경궁에 놀러 갔다 불난 곳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방화범으로 몰았다' '변호사가 수 차례 거짓 자백하라고 했다' '정부는 약자를 죽인다' '나는 억울하다' 등의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토지 보상 문제로 출발하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의 분노는 건설회사, 판사, 경찰, 변호사, 정부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 재생산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유형에는 8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불을 보면 흥분하는 중독성 정신질환자인 방화광에 의한 방화, 사회 혹은 개인에 대한 분노의 방화, 보험금 등 금품 이득을 위한 방화, 그릇된 영웅심에 의한 방화, 공공시설 파괴를 즐기는 사람 즉 반달리즘에 의한 방화, 아이들에 의한 충동적 불장난에 의한 방화, 범행 은닉 목적의 증거 인멸 방화, 다수 인명살상이 목적인 테러에 의한 방화 등이라고 합니다. 숭례문 방화의 경우는 전형적인 분노에 의한 방화입니다.
분노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파괴해 가기 시작합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 분노를 어떻게 하면 다스릴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거짓과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는 무릎을 끊어야 합니다. 내 안에 마귀가 틈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귀를 쫒아 내는 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힘이 마귀를 쫒아 냅니다. 마음속에 분이 가득할 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송가에 보면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라는 곡이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맘에 분이 가득할 때 기도했나요,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잊지 마세요” 그렇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분을 삭혀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자신을 거룩하게 할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은혜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2. 말의 은혜
그리고 29절에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고합니다.
말에 대한 은혜로움입니다. 우리는 말을 잘해야 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성격이 좋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은혜롭지 못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좋은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맞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은혜롭지 못하면 상처가 되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은 성도의 은혜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누군가다 듣는 다는 것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말했지만 그 말을 전혀 다른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살면서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저 사람은 한국말을 모르니까 괜찬아! 라는 마음으로 말을 함부러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은 이상하게 말의 내용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분위기로 전달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쁜 말을 하면 상대방도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상대방이 한국어를 잘 알아듣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어를 알아듣는 일본인들이 많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학생때 한참 은혜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하고 버스 안에서 둘이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한참 같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내리면서 하는 말이 학생들 은혜 받았어요! 하면서 내렸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랐었는지요. 우리는 우리끼리 한 말인데, 누군가가 그 말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는 듣는 이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나는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너 들으라고 한 말 아니야, 라고 하지만 말은 모든 사람이 다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그 사람의 인품입니다. 인격입니다.
‘왕의 아이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을 위한 시’가 있습니다.
말하는 것을 모두 생각하되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하지는 마십시오./ 적은 말속에는 많은 이해를 담고 알고 있으되 입을 다무는 사람이 되십시오. /입을 지키는 자는 능력을 보전하지만 무익한 말에는 생명이 새어 나갑니다. / 군더더기 말은 심판을 받게 되지만 과열되지 않는 혀는 생명나무입니다. /말이 성급한 사람보다도 바보가 더 희망이 있습니다./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사랑을 받으며 또 지식을 쌓습니다./ 침묵은 대화의 훌륭한 기술입니다./ 입보다 더 실수로 잘 열리는 문은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는 혀의 힘에 있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자가 참으로 자유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생활의 은혜로움을 유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자신이 죄인 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를 말하기를 “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부정한 입술을 정결하게 한 것이 제단의 숫을 가지고 와서 그 입술을 지저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말을 정결하고 은혜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로운 말을 합니다. 정의로운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은혜로운 말입니다. 잘못하면 정의로운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 오히려 마음을 닫게 만들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그 마음을 열어주어서 사람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늘 닫힌 마음으로 살아가던 삭개오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예수님의 “오늘 너희 집에 가서 쉬어야되겠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 말에 삭개오의 마음은 녹아졌고, 자신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내 기준으로 남을 정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나 또한 또 다른 엄한 기준을 가진 사람 앞에서 정죄 당할 것입니다. 은혜로운 말로 상처를 감싸 안으시길 바랍니다. 은혜로운 말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은혜로운 말로 여러분의 마음을 표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은혜로운 사람입니다.

 

3. 행위의 은혜
은혜로운 생활은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에 있습니다. 32절에 보면 “서로 인자하게 하면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인자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인자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온유하고 겸손하고,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급하게 화내지 않고, 참을 줄 알고, 급한 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말과 함께 보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봅니다. 아무리 천사와 같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 말에 행동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늘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을 이해한다는 말을 영어에서는 “understand” 라고 합니다. 그 말은 말 그대로 밑에 선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 밑에 서 봐야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면 그가 왜 그랬는지를 알수 있고, 그 사람의 실수가 있을 때, 왜 그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가 보이고, 그러고 나면 그를 불쌍히 여길수도, 또 용서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은혜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은혜로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우리 안에 있는 거짓과 분노를 몰아내야 합니다.
이 거짓과 분노는 마귀가 틈타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거짓말 한마디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마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사람들은 가벼운 거짓을 말할 때 상대방을 무너뜨리거나, 곤경에 빠지게 하려고 하지는 안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면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여러분이 내 뱉은 한마디의 거짓과 한번의 분노가 전혀 엉뚱하게 상대방을 상처를 내고 무너뜨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그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주님 안에서 거듭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에도 여러분의 얼굴 속에서 성령이 주시는 은혜가 넘처 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말속에서 상처가 싸메지고, 사람의 마음을 여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움직이는 행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실하신 주님 앞에 돌아오는 일들이 생겨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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