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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1-11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1-11               09.10.18
 
그전에 목회 하던 곳에서  한국에서 한 분이 등록을 했습니다. 몇주후 엔가 그 집사님이 편지를 한통가지고 오셨습니다. “이것 한국에서 섬겼던 교회 목사님이 일본에 교회가 정해지면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뭔가 하면서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추천장이었습니다. 이분이 한국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고, 무슨 일을 했고, 그리고 어떤 봉사들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분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써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아직도 이런 분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그 목사님의 신앙과 인격을 믿을 수 있었고, 그리고 그 목사님이 얼마나 이분을 아끼고 있는지, 그 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보지만 그 집사님의 신앙과 인격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보지만, 오랬 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한 것 같은 신뢰감이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누군가를 멀리 보낼 일이 있으면 추천장을 써서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내 저도 추천장을 써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 “구보 세이찌”라는 일본청년인데, 그 청년은 지방본사에서 동경지사로 출장을 와서 있던 중에 마침 놀라운 장면을 하나 목격을 했었는데, 신죽쿠의 신오쿠보역에서 한 한국청년이 술에 취한 사람이 철로에 떨어진 것을 보고 뛰어들어 그 사람을 살리고 자신은 미처 전철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던 그래서 그 일이 온 일본사회를 한동안 충격과 감동으로 몰고 갔던 그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술에 취한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가 있는가! 를 생각하다가 자신도 한국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일단은 한국어를 먼저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한국어학원을 찾았는데, 마침 그 한국어학원이 제가 목회 하던 교회의 성도가 하던 곳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심을 다해서 교회에 출석을 했고 이제 본사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소식을 받고는 저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다시 본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왕 돌아갈 것, 제가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갈 지역에 교회를 소개시켜주십시오! 저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을 위해서 다음주에 세례를 주고 그리고 교회주소록을 뒤쳐서 그 형제가 다니는 본사주변의 교회를 선정을 해서 저도 그 형제에 대한 신앙의 이력을 적어서 편지를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제 목회에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목사는 비록 성도를 떠나 보내지만 행복을 맛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때로는 교회를 피치 못 할 상황으로 교회를 달리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목사가 여러분의 추천장을 써 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엉망인 성도에 대해서는 추천장을 써줄 수가 없습니다. 괜히 추천장의 내용과 사실이 다르다면 안 써준 것만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한성도가 비자를 받는데, 제가 추천장을 써준 적도 있습니다. 목사라는 신분으로 써준 추천장이 입국관리국에 신뢰감을 주어서 비자가 나온 경험도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 한 장의 종이가 가져다 주는 신뢰감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추천장의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라는 말을 합니다.
오늘은 성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추천장.
초대교회시대에는 “천거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추천장”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을 공격하는 대적자들은 천거서를 가지고 바울을 꼬투리 잡았습니다. 천거서는 우리말로 추천서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떠난 이후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해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은 추천서를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근거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일부 고린도 교인들 중에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올 때“본부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천거를 받아왔냐? 우리는 사도들이 인정하는 천거서를 받아왔다.”이러면서 바울을 불신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추천서는 당시 초대교회에서 확실히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자들이 이사를 간다거나 어쩔 수 없이 다른 교회에 갈 경우에‘이 사람은 이런 직분을 맡았고 이러한 신앙생활을 했으니 잘 섬기고 신앙생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식으로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집사님의 경우와 같습니다. 
한마디로 추천서는 그들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명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거나 교회를 옮겨야 할 때는 이명서를 써줍니다.
이 이명서의 제도가 원래 교회에 있는데 사실 한국교회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성도들이 하도 교회를 자주 옮기고, 또 옮길 때에 어떤 절차도 밣지 않고, 자기 기분에 따라서 옮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교회에서는 잘 지켜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일본인교회에서 사역 할 때에 결혼을 해서 부인이 신랑이 다니는 교회로 옮길 때도 이명서을 써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 청년이 다른 교회로 교회를 옮기고 싶은데 옮길 수가 없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목사님이 이명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는 좋은 전통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금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추천서를 받아 제출해야 되는 그런 존재인가를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증거하면서 세운 교회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종이 한 장으로 그 사람을 다 설명서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 추천장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나에게는 분명한 추천장이 있는데 그것은 글로 쓴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로 추천장이다. 편지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종이 한 장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추천장이 있다 할지라도 그 추천장대로의 삶이 증명해주지 않으면 그 추천장은 종이 조각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추천한 사람의 인격 마져도 의심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2. 편지.
그래서 사도바울은 종이로 쓰는 천거서보다도 직접 사람을 통해서 보내는 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편지는 종이에다가 먹으로 쓴 글이 아니라고 합니다. 2절에 보면“우리 마음에 썻고 뭇사람이 앍고 읽는 바라”고 합니다.
우리는 편지입니다. 누가 보내는 편지입니까? 그리스도가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 속에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 편지 속에 가득 차 있는 사랑과 은혜 속에서 감격해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반가운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그 가장 좋은 소식은 무엇인가 하면, 당신의 죄를 용서했다는 소식입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당신의 모든 병이 낳았다는 소식입니다. 당신의 고통 하던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안심하라는 소식이 세상에 좋은 소식인줄로 믿습니다.
1921년, 미국의 한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 루이스가 싱싱 감옥의 소장이 되었을 때 캐서린은 어린 세 딸을 둔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감옥 내에서 농구 경기가 열리자 세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서 죄수들과 함께 외야석에 앉았습니다. “남편과 나는 여러분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 살인범이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점자를 가르치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죄수들을 위해 수화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16년 동안이나 캐서린은 싱싱 감옥의 죄수들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캐서린이 출근하지 않자 죄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감옥 안에 퍼졌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감옥에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녀의 집에 안치되었습니다. 한 교도관이 순찰을 돌 때 감옥 문 입구에 많은 죄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얼굴은 엄숙했습니다. 그 교도관은 놀라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좋아요, 여러분. 가십시오. 다만 오늘밤 안으로 감옥에 돌아와야 합니다.”
싱싱 감옥의 죄수들은 살인범, 어린이 강간범 등 국가에서 평생 격리시킨 미국 최악의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도관은 감옥의 문을 열었고 죄수들은 아무런 감시 없이 캐서린의 집까지 걸어가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감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온 세계는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 보게 되었다.   한사람의 진실한 그리스도의 편지된 삶의 모습이 감옥 속에서 꽁꽁 얼어있던 영혼들의 마음을 다 녹였습니다.  그 많은 흉악범들이 캐서린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고 있는 지 모릅니다. 
 
3. 새언약의 일군.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인간이 쓴 어떤 추천서에 의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되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새언약이 옛언약과 비교해서 새 언약의 일꾼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지를 설명합니다. 옛 언약은 돌에 새긴 것으로 죄를 죄 되게 하고 심판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영에 새긴 것으로 죄인을 구원하여 의롭게 하여 천국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새 언약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바울은 그것을 마치 해 앞에서 달이 보이지 않음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10). 바울이 이같이 옛 언약의 직분과 새 언약의 직분을 비교하는 것은 고린도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율법으로 그들을 얽어매려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으로 사람들을 얽매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힘들게 만들어서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에게서 떨어지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새 언약은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러 오신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만 하면 살아납니다. 소망을 가집니다. 삶의 희망과 용기가 솟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어두움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변한 사람입니다. 그의 일생이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새 언약은 우리를 자유 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언약의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6절 말씀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의 조문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아멘.
성도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법적인 단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율법)도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법이 있음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는 규범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동은 죄니까 하지 말라 가 바로 법의 요청입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 성숙의 차원에서 보면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 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고 우리의 심장이 하나님의 심장으로 대체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못하던 것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던 것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주는 능력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법의 단계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훌륭한 사람을 지칭하며 법이 없어도 살 사람  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법에만 문제없으면 훌륭한 사람입니까? 이것은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훌륭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진정 훌륭한 사람은 아름다운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실정법을 뛰어 넘어, 자연법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 사람을 살리는 일들을 우리가 하게 되어집니다. 사람을 세워주는 일을 우리가 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일꾼 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를 처다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처다 보면서 우리 안에 무엇이 써져있는지 그것을 사람들은 이미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서, 여러분의 얼굴에서 베어나는 진실한 모습이, 여러분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의 약속시간을 지키는 그 모습 하나 하나가 다 편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모습이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무엇을 사람들에게 읽혀주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읽혀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읽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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