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집에 거하는 자
시편84:1-12 10.6.6
지난주에는 우리교회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김주열장로님의 장립예배를 준비하면서 온 성도들이 한맘을 이루어서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어떤 이는 금식으로 준비하는 이도 있었고,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시는 분도 있었고,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섬기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교회는 성도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온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되는가! 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서 참 많이 하게 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곳,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 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교회는 생각해 보면 그리 거룩한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을 교회로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 의인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환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에는 병들고 죄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까 거룩한 곳은 아니지요,
그러나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왜냐 하면 비록 시작은 그런 사람들이 모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변화되어져 가고 거룩해 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은 죄인들이 병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져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온 교인들이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땅에 많은 상처받고 아프고 죄짐으로 고통 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쉬기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다윗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주 강하게 묻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하기를 아니 다윗이 왕인데, 성전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왜 못 가고 저렇게 한숨 짖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배경을 한번 보면 다윗의 아픈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것은 다윗이 왕위에 있으면서 가장 힘이 들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힘이 들 때가 언제인 것 같습니까!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싸우면 됩니다. 그런데, 그 적이 내부에 있을 때, 지도자는 힘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 내부의 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면 더욱 힘이 듭니다. 세상에 부모를 가장 약하게 만드는 이는 자식입니다. 자식의 문제 앞에서는 부모는 한없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자식이 무슨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는 갑자기 무슨 죄인이 된 것 같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분은 아니요, 자식에게 제일 강합니다. 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자식에게는 부모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자식을 위한 일이 되어질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자식과 대립관계가 되어지면 부모는 자식과 연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자식에게 손을 들고 마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자식과의 대립관계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반역을 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일 수 없어서 그를 피해서 도망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자식에게 피해서 도망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다윗이 힘이 없어서 도망을 했겠습니까! 다윗은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뤘던 대장군 아닙니까! 그런데도 당대가 아들이기에 도망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아들에게 쫒기는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세가 되어보니 그에게 있어서 평소에는 늘 생각만 나면 부담없이 찾았던 성전이 그렇게 가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지낼 때의 행복했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무치는 마음으로 쓴 것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84편입니다.
1. 주의 집에 거하는 자의 복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님의 집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이제야 고백하게 되어집니다. 물론 다윗은 평생을 성전을 사랑하면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제사장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고, 성전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성전을 마음대로 찾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좋은 것을 빼앗기고 났더니 성전에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 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전을, 교회를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큰복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가는 공산권과 이슬람권에 수많은 지하교회 성도들은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를 우리가 자유롭게 와서 예배드리는 이 교회당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교회의 역사를 보면 우리 역시 교회당이 없었던 시절이 근 삼십여년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예배드리고, 공회당에서 예배드리고, 이 교회, 저 교회 일본교회들을 빌려가면서 그들의 예배드리고 남는 짜투리 시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엌도 없어서 집에서 밥을 해 가지고 와서 예배가 끝나면 먹었습니다. 교회를 알리고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성도의 전화를 사용했어야 했습니다. 빌려서 사용하는 예배당이었기에 무든 물건도 자유롭게 쓸 수 없고 사용했으면 반드시 원래대로 해놓아야 했습니다. 화장실의 물기까지도 다 딱아 내야 하는 서러움의 시절이었습니다. 혹시나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교회 물건이라고 망가뜨릴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예배드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온 교회 교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예배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언제든지 찾아가서 새벽기도회도 하고, 수요예배도, 금요일에도 마음껏 부르짖을 수 있는 교회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집에서 밥을 해오지 않아도 되는, 국을 옮기다가 차에다가 다 쏟아서 온통 냄새가 베고, 성도들 먹을 국이 없어진 것 때문에 속상해서 눈물 짖는 그런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록 멀어도 우리의 교회당을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의 교회당을 15년전에 구입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교회당의 리폼이 완성되고 입당하던 날 온 교인들은 얼마나 감격했겠고,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교회역사였습니다.
여러분! 주의 전에 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중에 가장 큰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주일한번만이 아니라, 수요일도, 금요일도, 그리고 매일 새벽에도, 저녁에 퇴근길에도 들릴 수 있으면 들리시길 바랍니다. 성전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성전을 그리워하시길 바랍니다.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병들고 아프면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큰복인데도, 그것을 누리고 있을 때는 그것을 복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니다. 빼앗기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복 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짜 복은 우리의 평범함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 아내, 자녀들로 인하여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음을 감사하길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나에게도 그런 복을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온가족이 한 교회당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그 복을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에 주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오늘 다윗은 성전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도 한때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성전을 찾았었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예배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 간절한 마음이 어떻게 표현됩니까!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와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얼마나 애절한 표현입니까! 날아다니는 미물 같은 참새, 제비가 부러워졌습니다. 마음대로 성전을 날아다닐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애절한 마음을 봅니다.
강단에 꽃꽂이를 하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강단의 꽃꽂이를 할 때에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한답니다. 그 이유는 강단 꽃은 사람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도 일주일 내내 혼자서 강단에 아름다움과 향기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배당에 아무도 없어도 일주일 내내 자신이 발할 수 있는 최고의 향기를 시들어질 때까지 발하고 있는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이 부럽지 않습니까! 오늘 다윗의 부러움은 바로 그런 부러움이 아니겠습니까!
2.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의 복
다윗의 또 한가지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매이커(John Wanamaker)의 생애를 담은「성경이 만든 사람」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워너메이커가 어느 날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정중하게 회답을 했습니다. "나는 주일을 성수합니다. 주일날은 꼭 교회에 나가야 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해야 합니다. 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한다면 장관직이라도 맡을 수 없습니다." 해리슨 대통령은 이것을 참작해서 주일날 교회 나가는 것과 교회학교 교사하는 것을 100% 허락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허락하겠으니 그런 조건으로 장관직을 맡아 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는 체신부 장관이 됐습니다.
그 후에 그는 매 토요일이 되면 교통이 불편한 옛날에 그 느린 기차로 워싱턴DC에서 필라델피아까지 타고 갑니다. 그리고 여전히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성수주일하고, 예배드리고, 주일 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장관직 4년 동안 무려 20만 킬로미터를 기차로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성수주일을 하고 봉사했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장관직 이 주일학교 교사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때 그는 대답했습니다. "장관직은 몇 년 하고 마는 것이고 교사는 평생 하는 것이오. 장관직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이 거룩한 일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이고 나만이 하는 일입니다." 19살 때에 교회학교 교사로 임명이 되어서 85세까지 67년 동안 교회 출석을 개근하고, 교회 봉사를 성실하게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는 인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받으시고 그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워너 메이커는 시온의 대로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교회로 달려갈수 있는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아메리칸 대륙에서 정착을 하고 마을을 형성할 때, 모든 집의 창문을 교회당을 향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창문만 열면 교회당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했고, 모든 지름길은 교회로 향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시온의 대로를 간직하고 싶어하는 그 믿음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오늘날의 미국으로 복을 내려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6절에 보면 눈물골짜기로 지나가게 될 일이 있어도 그곳을 샘물이 나는 곳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눈물을 샘물로 만드시는 은혜, 한숨을 기쁨으로 만드시는 은혜, 불평과 불편한 환경을 기쁨과 감사의 환경으로 만들어주시는 은총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대로를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길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과 통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희망을 주십니다. 비젼과 꿈을 주십니다. 살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이런 시온의 대로로 여러분의 하늘길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축복의 길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길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3. 주께 의지하는 자의 복
그리고 다윗의 고백 속에서 또 하나의 고백은 12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의 바로 그런 복을 받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 비참합니다. 처량합니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간절한 고백은 역시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성전의 문지기라도 삼아주셨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까! 그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왕궁에서 편안하게 먹고 마시는 것 보다 훨씬 내 마음이 편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곳에 있으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나의 해가 되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내게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다윗은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힘과 능력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니!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훨씬 복이 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가 복이 있습니다.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종교를 의지하러 가는 곳이라고 비하하며 무시했던 아인슈타인이 활동할 당시에 독일에서 나치스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대학의 지성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즉시 나치즘에 무릎을 꿇고 아첨했다. 그들은 나치즘이 주장하는 잘못된 인종이론을 마치 옳은 것인 양 떠들어댔다. 또 나는 신문과 언론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신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필봉을 놓았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독재자에 항거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줄지어 감옥으로 향했다. 나는 교회에 한없는 찬사를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식어지고, 약해지고, 그리고 쓰러지고, 후에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셔서 우리에게 늘 힘이 되어주시고, 능력이 되어주셔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벌써 6월에 들어셨습니다. 금년도 한가운데 섰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신 분도 있지만 신앙의 리듬을 깨뜨린 분도 혹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가 성전중심의 신앙을 다시 한번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중심의 삶을 사는 모습은 성전중심의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성전을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무나에게 주어진 것 같지만, 아무나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누릴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성전,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좋은지를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다윗도 성전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깨달았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향해서 언제든지 달려 나갈 수 있는 시온의 대로를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복을 누린다고 다윗이 고백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복도, 하나님중심, 교회중심의 삶을 통해서 눈물을 샘물로 바꾸어주시고, 힘을 얻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해와 방패가 되어주시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는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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