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자의 복
사30:18-19 10.6.20
주식투자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주식이나 펀드 같은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투자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그 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주식투자는 누구든지 실패할 수 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아에 투자하지 않는 것” 일고합니다. 즉 아무리 월가의 투자 고수라 해도 실패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뼈저린 실패를 겪은 사람이 성공을 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실패했을 때, 낙담보다는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고, 같은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구에 비교를 합니다. “무조건 휘두르기보단 찬스 때만 노려라” 좋은 공이 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면 반드시 배트를 휘두를 기회는 생긴다. 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윈저펀드로 5600%의 신화를 쏴 올린 존 네프가 강조하기를 “살 종목이 없으면 팔짱 끼고 기다려야지 차선책을 골라봐야 손실만 자초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다리기 위해서는 긍정과 낙관이 필수라고 합니다. 존 템플턴은 《템플턴 플랜》이란 책에서 투자자들이 항상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 21가지를 소개했는데. 그는 “컵의 물은 ‘절반밖에’가 아닌 ‘절반이나’로 표현하라”며 “생각을 제어하는 건 성공투자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밀어내는 대신 낙관적 사고로 일시적인 출렁거림에 대비하라는 메시지인데, 주식투자는 한번으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고. 평생에 걸쳐 등판해야 하는 반복적인 게임이므로. 낙관과 긍정적인 접근만이 타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기다림이라는 것은 주식투자와 같은 곳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영역 전반적인데서, 기다림의 미학은 존재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아기를 갖고서도 10달이 되어야 예쁜 아기를 볼 수 있고, 아이를 보면서 젓먹이고 하면서 1년 가까이를 기다려야, 기어다니고,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몇 년을 기다려야 유치원을 가고 란도세루를 메고 학교 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10수년을 기다려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수년을 기다려야 결혼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다림이 없는 곳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기다림입니다. 전철을 타더라도 기다려야 하고, 식당에서 밥을 시켜도 기다려야 하고, 무엇하나 기다림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 기다림을 잘 하면 우리는 좋은 것을 맞이할 수 있지만,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면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오랜 세월을 참아가면서 기다린 것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입니다. 어렵고 힘이 들 때마다. 메시야가 오신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그 오랜 세월, 고통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오늘의 고통과 서러움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1. 기다리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런 기다림은 인간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 본문에 보면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떠나간 이스라엘 백성을 기다리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흔히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잘 압니다. 아버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둘째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모든 것이 풍부해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던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당돌한 말을 합니다.
“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우리들한테 재산을 나눠주실 거 아닙니까! 내가 집에서 답답해서 견딜 수 없으니, 내가 밖에 나가서 장사 좀 해보렵니다. 그러니 어차피 내가 받을 재산 미리 좀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것으로 장사를 해서 멋지게 돈 좀 벌어보겠습니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 돌아가실 것을 이야기하면서 돈 달라고 하는 아들, 더군다나 장사를 해본 경험이라고는 한번도 없는 아들, 맨날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아들이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의 말대로 재산을 나누어서 줍니다. 그리고는 한번 열심히 해보라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큰아들은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분명히 저거 또 사고 치러 가는 건데, 괜히 아버지 돈이나 띁으려고 하는 것인데, 맨날 일할생각은 없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놈에게 아버지가 넘어가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떠나간 아들입니다. 아버지 역시 그런 아들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달라고 하니까! 두말없이 내어주시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역시 모든 부모는 다른 집 아이들에게는 냉정해도 자기집 아이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다른집 아이들에게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하면서, 그런 것도 못참냐! 하면서 이야기도 잘합니다. 그런데, 자기집 아이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미리부터 서 걱정이 앞서고, 눈물이 앞서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생을 안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그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가 고생하고, 울고, 하는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한없이 약해지셔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은 대신 치루시고, 그저 우리에게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해라! 그러면 구원받는다. 하면서 가장 하기 쉬운 일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엄하게 교육하시고 훈련시키실 때도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그 날부터 아들을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아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 아들이 그 돈을 금방 탕진 해버릴 줄도 아셨고, 나중에 돌아올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나간 그 문을 닫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아버지의 눈은 아들 나간 문에 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문열어 놓고 기다리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 고대합니다.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하고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는 멀리서 아들이 거지꼴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는 신발도 안신고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냄새나는 그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안고는 목욕시켜주고, 새 신발 시켜주고, 반지 끼워주고, 잔치 베풀어줍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뭐 이쁘겠습니까! 그러나 이뻣습니다. 돌아와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아들이었는데, 평생에 한으로 남을수 도 있었는데, 돌아와 준 아들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했고,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 떠난 아들, 하나님 떠난 백성들, 이스라엘을 아버지집에 있으면서도 늘 아버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에 강대국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애굽이 바벨론 으로 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 하나님 품을 떠난 일들은 없습니까! 몸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고, 하나님앞에 기도하기보다는 세상의 방법들, 세상의 힘이 있는 사람들과 잘 사귀어 보려고 하는 생각은 없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간 마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우리의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몸과 마음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진심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와서 무릎꿇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일어나시는 하나님
그리고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기다리시다가, 지쳐서 일어나신다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초초하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니다.
우리가 급한 일이 있거나 초조한일이 있으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일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서성거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테반집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중의 한사람이었던 스테반집사가 성령의 충만하여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설교하고는 그런데, 그 예수님을 너희가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 설교는 사도 베드로 역시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삼천명이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은 역사가 일어나면서 바로 그것이 예루살렘교회의 태동을 가져왔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설교인데, 스테반의 경우에는 돌아 날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찔리니까! 그것이 곳 분노로 바뀌어서 스테반을 향해서 돌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장면을 하늘에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스테반이 자신을 향해서 돌아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복음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고 더욱 힘을 내어서 복음을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서 예수님이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벌떡 일어서서 스테반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스테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5,56)
즉 그 천상의 모습을 스테반이 영의 눈이 열려서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의 눈빛과 스테반의 눈빛이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스테반은 주님의 눈빛을 마주보는 순간 그 어떤 아픔도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이 돌에 맞아서 찢겨지고, 피가 쏫아지기 시작해도 스테반의 얼굴은 해같이 빛이 났습니다. 왜요,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본문은 뭐라고 합니까! “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긍휼이 여겨 주시기 원하십니다. 긍휼이 여겨주신다는 것은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이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로 돌아서는 모습. 당장에 눈앞에 있는 이익을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포기하는 우리의 모습, 억울한 일 당해도 내가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참아내고 있는 모습,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하는 그 모습을 주님은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어서 일어나셔서 보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긍휼이 임하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만, 인간들은 끊임없는 배반과 도망을 했습니다. 쉬지 않고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의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인간들의 죄악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또한 끊임없이 인간들을 긍휼이 여겨 오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서로 벌어 벗었음으로 인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인간을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도 긍휼이요, 자기 동생 가인을 시기하여 죽인 가인에게 표를 주신 것도 긍휼이요,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사람 지었음을 한탄하셔서 홍수를 통해서 심판하시려고 했을 때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게 하신 것도 긍휼이요,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들에게 죽을 상황 속에서 애굽의 노예로 팔리게 한 것도 긍휼이요, 후에 애굽에서 민족을 이루고 출애굽할 때,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군사들이 쫓아올 때, 홍해를 갈라 주신 것도 긍휼 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수없이 배반하고 또 저주를 받아서 죽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도 긍휼입니다. 우리가 그 긍휼하심을 입었기에 오늘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죄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댓가를 오늘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우리들이지만 오늘도 우리가 이 자리에게 하나님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살의 모습 속에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 임하시길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수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고비가 있습니다. 위험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더욱 그런 일들이 많겠지요,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 역시 얼마나 그런 위기의 순간들이 많겠습니까!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시기 위해서 여러분 때문에 일어서십니다. 하나님이 아주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삶을 돌보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3. 기다리는 자의 복
그러므로 본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 그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그런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긍휼 하심이 임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을 하면서 기다려야 합니까! 19절에 보면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 하시리라”고 합니다. 즉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흔히 기도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다려라!” 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입니다.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이 사실을 기대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고, 행복이고, 감사고, 찬양이 되어집니다. 그리고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에스겔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약속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면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화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네게 구하여야 할지니라”(겔36:36,37) 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그 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는 방법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셔도 그것을 우리가 소유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뭐가 필요한지 다 아시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하고 대화를 나누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도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으면 이제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응답되어지기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기도는 일방적입니다. 우리의 할 바를 했으면 이제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인 것입니다. 기도한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희망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불행이지만, 현실은 고통이지만, 그러나 그 현실을 참을수 있고, 견딜수 있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응답하신다. 반드시 나는 일어설 것이다. 나는 반드시 회복되어지고,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응답의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기다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일을 기다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배를 기다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 보신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수많은 날들을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날을 기다리셨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기다리셨고, 우리가 하나님앞에 믿음을 드리는 날을 기다려 오셨습니다. 두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향해서 무릎꿇고 나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왜요! 은혜주시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왜요!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싶으셔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으셔서 그랬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그리고 조용히 무릎꿇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긍휼 하심으로 인하여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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