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이삭 창17:1-14 10.7.4
어느 목사가 알프스의 한 빙하 동굴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은 단단한 얼음을 뚫어 만든 통로를 통해서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으시시한 터널을 따라서 점점 더 깊이 내려감에 따라 가늘게 들어오던 햇빛도 차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 끝의 좁은 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앞을 분간할 수없을 만큼 완전히 깜깜했습니다.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가디리세요! 5분쯤 지나면 앞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가만히 선채로 기다렸습니다. 과연 그 안내인의 말대로였습니다. 5분쯤 지나니까 눈앞이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눈이 새로운 환경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정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안내 책자를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좌절하고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벽을 더듬던 초조한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때 빛이 들어오고,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아브람이 하나님에게 언약을 받고 약 10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을 해 주신 자식의 문제가 얼른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라가 아브람에게 여종 하갈을 줘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을 낳게 된 이후에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이 침묵하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것입니다.
그리고 99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 앞에서 완전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후손을 주겠다.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17장에서 아브람에게 이삭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13년 걸려서 침묵하시다가 나타나셔서 이삭을 낳게 하시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 이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이삭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침묵의 의미
1절 2절입니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라고 합니다.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장 1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86세라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즉, 13년 동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3년 동안이나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하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낳은 후 아브라함에게는 13년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까지 전부 25년을 걸리는 속에서 10년 동안 이삭을 안주시자 사라를 통해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는데 이스마엘을 낳고 나니까 13년 동안 아무 말씀도 안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침묵의 의미가 있습니다.
침묵은 무엇인가 하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한 번 뒤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은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뭐라고 하십니까? 완전해 져라. 왜 네가 자꾸 네가 하려고 하느냐? 나를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쳐지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있는 침묵 13년이란 세월은 자신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또 회개하면서 고쳐서 온전해 지는 연단의 기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안해 주신다면 여러분은 얼마동안이나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단맛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의 성숙의 기간이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서 다듬어지고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런 단맛이 난 것같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숙성이 되어서 깊은 맛이 나야 바로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 다는 거죠. 이런 것을 모르면 덤벙댑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침묵하는 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고 그것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만드시는구나 하며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영적 이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혹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드라도 그 의미를 오해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뜻을 깨달으려고 애를 쓰고 이해를 해서 가장 좋은 영적 이삭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도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이 금보다 더 귀하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침묵의 기간이 연단이여서 그 연단이 되면 칭찬 영광 존귀가 온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 요셉이 가장 힘이 들었을 때가 언제라고 생각을 합니까! 요셉의 형들에게 팔렸을 때!, 요셉이 노예시장에 끌려갔을 때!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혔을 때! 여러분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학자는 말합니다. 요셉의 생애 속에 가장 힘 이 들었을 때는, 요셉이 감옥에서 두 사람의 꿈을 해몽해주는데, 그 중에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가 다시 복직을 하게 되면 왕에게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말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그가 복직이 되고도 3년을 요셉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셉에게 견디기 힘든 시간은 바로 그 3년의 시간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걸어놓고, 하루, 하루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그의 생애에 피가 마르는 시간들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에 그가 바로 풀려났다면 요셉에게 더 이상의 드라마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왕에게 불려가고,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가뭄으로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식구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더 더욱 없었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서 후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을 만드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묵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큰 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기다려야 하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시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 침묵의 시간에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시간에 기도를 많이 쌓아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침묵의 시간은 우리에게 요셉을 애굽의총리로 만들어주는 일같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신앙의 인격
또 본문 4절 5절을 봅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즉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높은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로 폭 넓게 만드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격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격을, 마음을, 나의 관심을, 나의 보는 눈을, 내가 듣는 귀를, 나의 삶을, 나의 행동, 나의 인격을, 살아가는 생활을 바꾸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꿔지지 않으면 절대로 영적 이삭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도 내가 변화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을 내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나 내가 먼저 바뀌어야 상대방도 나를 수용해 주고 나를 보듬어 주지, 나는 안 바꾸고 상대방만 바꾸라고 이야기를 하면 절대로 바꾸지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삶에서 만나서 신앙의 인격을 바꿈으로 말미암아 귀한 영적 이삭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로마서에서 결론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뜻은 크다는 뜻입니다. 바울이라는 이름은 작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바울로 바뀌게 됩니다. 바로 그 사울이 바울로 바뀌어서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는데요 바울은 먼저 사울일 때 자기같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 그러고 정말로 자랑스럽게 신앙 생활했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난 다음에 자기가 엉터리인 줄을 깨닫고 완전히 내가 신앙생활을 잘 못했구나 깨닫고 3일 동안 눈이 안 보이다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비닐이 벗겨져서 분별력이 생겨서 그 다음 부터는 하나님의 이방인의 사역자로서 일생을 마쳐서 정말로 영적 이삭을 얻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 드렸던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의 신앙의 인격을 바꾸어서 영적 이삭을 많이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육신의 생각을 벗고서
그 다음으로 10절 11절을 보겠습니다."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은 9절 이하에 또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합니다. 아브라함을 바꾸어야 이삭이 나오기 때문에 즉 내가 먼저 바뀌어야 영적이삭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제는 세 번째로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각을 벗으라는 의미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까지 이제 10년 지나고 또 낳았으니 11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침묵을 하고 세 번째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하고 아브라함하고 관계를 새롭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 날에는 주일이라도 안식일이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조건 8일 날 받아야 됩니다. 그 때 왜 받느냐 하면 그 때가 고통이 제일 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8일 날에 받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나를 짤라내고 우리 주님과 같이 내가 부활의 새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내 방법과 하나님 방법은 너무나 달라서 아브라함 앞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왜 할례를 받으라고 했는가를 우리는 생각을 해 보아야 됩니다.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은 영적 이삭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18장에서 사라의 믿음을 바꾸어 놓으시고, 21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게 됩니다. 이삭이 가장 귀중한 것인데 바로 그 이삭을 얻는데 마지막 조건이 바로 할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므로 이삭을 얻게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는 것은 할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새로운 삶이 시작될 때 영적 이삭이 나에게 오는 것이지 내 육신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줘도 내가 그것을 받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얼마나 벗어나느냐는 것은 영적 이삭을 내가 얻을 조건이 얼마나 되느냐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도 더 많이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서 바로 영적 이삭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55장 7-9절에"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다 벗어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기억을 하고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더 많이 벗어나서 영적 이삭을 얻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많이 되셔야 될 줄 믿습니다.
나아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람의 큰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문둥병을 고치려고 아람 왕의 소개장과 많은 선물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자기가 큰 장군이고 북 이스라엘보다 더 강한 나라의 장군이여서 엘리사에게 오면 그 기별을 듣고 맨 발벗고 쫓아 나와서 자기 더러 앉으라고 하고 머리 위에 안수를 하면서 기도를 해서 병을 낫게 해줄줄 생각을 하고 기대를 잔득하고 왔는데 엘리사는 문도 열어 보지도 않고 대접도 하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 밖에 하질 않습니다. 나아만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이렇게 대접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옆에 있는 종들이 아니 왜 그것을 못합니까? 병이 낫는다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합니다.
나아만 생각에는 우리 동네에는 더 좋은 강도 많고 물도 많고 그러는데 하필이면 조그마한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그러느냐고 화가 났지만 종들의 말에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어 습니다. 그랬더니 나았습니다.
그 때 나아만이 뭐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아! 내 생각을 놓고 내 생각을 다 벗어버리고 나니까 이렇게 좋게 하시려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낮다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은혜 받을 때에, 말씀을 들을 때에 주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영적 이삭인 것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다 보니까! 말씀에 대한 오해를 하기 시작하고 곡해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이삭, 이것이 우리에게도 영적 이삭으로 약속되어집니다. 이 영적 이삭을 우리가 얻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침묵의 의미를 잘 깨닫고, 자신의 신앙의 인격을 바꾸는 일이 기다림 속에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할례의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이 주시는 약속의 선물 영적 이삭을 다 낳는 축복된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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