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벧전4:7-11 10.8.22
미국 시카고 대학에 있는 핵과학자회보 BAS 라는 단체는 1947년부터 지금까지 지구 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것을 관장해 오고 있습니다.
이 시계가 12시 정각을 알리게 되면, 인류는 핵 전쟁으로 인해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 도입된 1947년에는 냉전시대였는데, 당시 시각은 12시 7분전이었습니다.
이 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계속 12시로 향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고 분쟁이 줄어들면, 이 시계 바늘은 뒤로 돌아 가게 됩니다.
이 종말시계가 만들어진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이 시계는 지금까지 18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1953년 미국과 옛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는 종말 2분 전으로 종말에 가장 근접하게 당겨졌으며, 냉전이 끝난 뒤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1991년에는 11시 43분까지 후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이 시계가 다시 움직여 12시 5분 전에 맞춰졌습니다. 9.11테러가 발생한 뒤인 2002년에 12시 7분전으로 조정된 이후, 다시 2분이 더 가버린 셈입니다. 2분이 앞당겨진 이유는 먼저 그 동안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나라에서 일련의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북한, 이란 등이 핵 실험을 강행해 전세계가 바짝 긴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 등이 보유한 핵무기가 여전히 폐지되지 않는다는 것도 시간을 앞당기게 했습니다. 잠재적인 핵전쟁이 위협이 된 것입니다.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는 2만6,000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계가 12시 정각을 알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과학자들은 이를 한 단어로 아마겟돈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마겟돈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말로, 인류의 종말을 맞이하는 끔찍한 전쟁을 의미합니다.
BAS 관계자들은 핵무기 이외에도 지구의 종말을 이끌 수 있는 위협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며, 이로 인한 자연 재해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 역시 기자 회견에서 테러는 수백, 수천 명을 죽이지만, 지구 온난화는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테러보다 지구 온난화와의 전쟁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바로 이런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 언제나 국제회의의 주요 주제가 되어 집니다. 이 환경문제라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이 잘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어느 한나라가 잘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함께 노력해야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요즘 우리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것이 “에코포인트” 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친환경 이라는 말로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에코 라는 말로 쓰이지요. 친환경적인 기술이 적용되는 모든 것에는 바로 이 에코포인트가 적용이 되어지고, 그만큼 기업은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까! 바로 인류가 종말을 향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종말시계를 되로 되돌리려고 하는 노력들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할것을 명합니다. 본문7절에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심하여 기도하라” 고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1. 사랑해라.
그것은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해라 고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오면 일어나는 현상이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교회의 책망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첫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첫째가는 도시였습니다. 항구도시로서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활발한 교역로가 3개나 에베소를 통해서 로마로 연결되고, 그래서 온갖 무역이 발달하고 정치적으로도 비중이 큰 도시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곳이었고, 온갖 종교와 마술이 성행했던 도시였습니다. 정말로 복음이 필요했던 도시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에서 건너온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함께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후에 3개월 동안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2년동안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강론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사도행전18장8-10절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개척하고 유명한 성경학자인 아볼로가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에 디모데와 사도 요한이 목회하기도 한 곳입니다. 가장 뛰어난 주님의 종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교회가 에베소 교회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에베소교회에 대해서 ‘내가 너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또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칭찬 받아 마땅한 내용들이죠. 가장 성경적이고 뛰어난 종들이 말씀을 가르친 만큼 자랑거리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교회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시며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4-5절)고 하셨습니다. 에베소는 사도 요한이 노년까지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며 목회하던 곳입니다. 사도요한이 이곳에서 한 설교의 주제는 항상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젊은 형제들이 와서 “또 그 설교입니까, 왜 사도께서는 늘 사랑하라는 설교만하십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만 하면 모든 그리스도의 교훈을 다 이룬다.’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오늘 베드로서에서는 식어진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과 용서를 제시합니다. 본문8절에서는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합니다.
열심히 사랑하는 것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 잘 안되도, 미운마음이 들어도, 그래도 열심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상대방의 허다한 죄들이 어느 순간 덮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했던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진짜가 되어 집니다. 그 순간에 모든 허물들은 다 덮어지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우러나서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마음이 언제 우러납니까! 마음이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주님이 오시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책망만을 받게 됩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의 회복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왜 미워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그것을 찾고서는 회개하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회개해라 고 강요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했으면 다시 처음처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가 원하는 대로 사랑이 식어진 교회를 만들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사랑으로 똘똘 뭉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 대접해라.
그리고 또 하는 말은 대접하라 고 합니다. 대접을 하되 원망하면서 억지로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나그네 대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 바로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에 보면 두 장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장로는 가이오 장로입니다. 이 가이오 장로는 나그네을 잘 영접했던 사람입니다. 5절에 보면 “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라고 합니다. 나그네된자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대접하기를 즐겨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망을 받은 또한 장로가 나옵니다. 그는 디오드레베장로입니다. 9절에 보면 “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고합니다. 여러분 대접을 잘했던 가이오장로에게는 어떤 축복의 말씀이 임했었습니까! “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사도요한의 축복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오드레베장로에게는 너의 행한 일을 내가 잊지 않겠다, 라면서 책망을 합니다.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자신밖에 모르게 됩니다. 남을 대접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희생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적인 희생, 물질적인 희생, 정신적인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마지막이 가까울 때에, 즉 말세가 되어질 때에, 대접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할 까요!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집에 앉아서 있는데, 멀리서 나그네 3사람이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곧 바로 달려 나가서 그 나그네들을 영접을 합니다. 물을 가져다가 발을 씻겨주고,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대접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그가 지금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나그네라는 사실밖에 몰랐지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나그네를 정성을 다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그네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천사들이 무엇을 위해서 길을 가고 있었는가 하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려고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그네들이 아브라함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서는 그냥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 것입니다. 창18: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 때문에 그 성을 진멸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놀라서 메어 달리면서 기도합니다. 어떤 기도였습니까! “그 성에서 의인50명이 있으면 어떻하겠습니까! 그 의인50명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된 기도는 어떻게 이어졌습니까! 의인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까지 내려가면서 그 성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바로 그 성에 자신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구원해주십니다. 무슨 일로 시작된 일입니까! 대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보고서 극진하게 대접을 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일이 되어서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조카를 구원하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 때에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어 질수록 사람들의 정이 떨어집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강도만난 이웃이 있는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은 사람,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 이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대접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바라는 대접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도 정성을 다하는 대접을 하시길 바랍니다. 나그네를 대접 한다는 것은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평생에 한번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정성스럽게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영광을 맞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봉사하라.
그리고 또 하는 말은 봉사하라고 합니다. 본문10절에 보면“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말세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봉사를 하라고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는데, 섬기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태복음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이 달란트비유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그 이야기는 결산입니다. 그 결산은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때가 되면 맡긴 달란트만큼의 결산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 결산 때에 선한청지기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결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마지막결산의 모습은 내가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얼마나 잘살았는가! 이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이웃입니다. 이웃에 대해서 얼마나 봉사하는 삶을 살았는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구두쇠처럼, 자기만 아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쌓은 것을 이웃을 위해서 얼마나 내어놓고 섬기는가에 있습니다.
노불레스 오블리주 라는 말이 있습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에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 의해서 포위를 당했습니다. 후에 영국와 에드워드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됩니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방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 고 말합니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 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했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서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었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어 집니다. 귀족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희생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섬김과 봉사는 자신의 삶을 명예롭게 하는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것을 행할 때에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나, 대접을 하는 것이나, 봉사 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할 때에 내 것을 나가지고,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처럼, 대접 하는 것이나, 봉사 하는 것이라도 내 것을 가지고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접 하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의 결론을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봉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돌려드리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일의 말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케 하는 진리 요8:31-33 (0) | 2010.09.04 |
---|---|
여호와 닛시. 출17:8-16 (0) | 2010.08.28 |
평화의 복음 행10:36-43 (0) | 2010.08.14 |
절대적 주권 롬9:21-24 (0) | 2010.08.08 |
은혜로운 생활 엡425-32 (0) | 2010.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