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 출17:8-16 (15,16) 10.8.29
영국과 프랑스는 인접한 나라로서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많았습니다. 특히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이나 전쟁을 계속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100년전쟁이라는 것이지요.
이 100년 전쟁이 시작되기 약 300년 전인 1066년 영국에서는 ‘노르만왕조’가 성립되었는데, 이 왕조는 국력을 강화하여 프랑스 내부에 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되어 집니다. 이것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는 늘 긴장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0년전쟁이 일어나기 약 10년 전인 1328년에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4세’가 아들을 낳지못하고 사망하게 되자 그의 4촌 형제인 ‘필립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자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그의 모친이 프랑스의 선왕인 ‘샤를4세의 누이’라는 점을 내세워서 프랑스의 카페왕조의 후계자는 자신이므로 자신이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즉 한 사람이 영국과 프랑스를 동시에 통치하는 두 나라의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양국 간에 ‘100년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입니다. 두 나라는 프랑스 내의 영국영토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바로 이때에 위대한 한 소녀가 등장을 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잔다크’입니다. 그의 나이16세에 잔다크는 프랑스의 운명이 걸린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를 안겨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하면 잔다크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힘껏 살려주는 연성을 하고 자신이 프랑스의 깃발을 들고 앞장섬으로써 병사들에게 국가의식을 심어주어 승리하게 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병사들은 잔다크의 손에 들린 그 깃발을 보고,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켰고, 그 깃발을 보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결국 위기의 프랑스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 닛시 라는 말이 나오는데, 닛시라는 말이 바로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어떤 하나님의 깃발이 있었습니까!
1. 기도하는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을 때, 그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말렉 이었습니다. 이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후손 에돔과는 다른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에서의 딤나라는 첩에게서 낳은 서자의 후손들이 아말렉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반가울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막 광야 길에 들어선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 아말렉 사람들은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도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욱이 광야에 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상대하기로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습니다.
모세는 이 싸움에 여호수아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싸우도록 합니다. 비록 전쟁을 해본 적이 없는 이스라엘군이었지만, 여호수아장군이 이끌면서 그들은 치열한 공방을 하게 됩니다.
이때에 모세는 여호수아를 장군으로 전쟁을 치루게는 하지만, 걱정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을 해본 훈련된 군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애굽에서 노예로만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지, 싸움기술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훈련된 아말렉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산에 올라갑니다. 전세를 충분히 관찰 하는 곳으로 올라가서는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손을 올리고는 하나님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게 되는데,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더라도 모세가 손을 들기만 하면 다시 역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고, 힘이 들고, 불리해도, 기도하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말로 모든 상황을 역전 시킬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페르시아와 왕이었던 아하수에루 왕 때에 포로민이었던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그런 사실들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하만은 유대인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에스더의 사촌오빠였던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앞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실을 무산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왕의 제가 없이는 왕앞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에스더는 심한 부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때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너를 왕후로 하나님이 삼으신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그에게 사명을 갖게 합니다.
그때에 에스더왕후가 결단을 하고 한가지를 요구합니다.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그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결단을 나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민족의 목숨이 달려있는 이 중대한 문제 앞에 금식을 통하여 기도하고 나아간 에스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은 기쁨으로 에스더를 받아 들였고, 에스더의 간청을 듣고는 이 모든 일이 하만의 모략이었음을 안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해놓았던 막대기에 대신 죽는 일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게되는 놀라운 역전의 이야기가 에스더서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언제든지, 얼마든지, 전세는 역전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기만 하면 아무리 전세가 악하고 금방질것 같다가도 금방 다시 역전되어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의 손을 내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의 손이 내려지지 않고 올라 갈 때에 놀라운 승리의 주인공이 되어 집니다.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을 향해 가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항해 도중에 바람이 잔잔해 져서 배는 그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배인데, 바람이 불지 않으니 야단이 난 것입니다. 답답해진 선장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이 도우시도록 기도 좀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배를 바람 맞을 방향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말을 들은 선원들은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그러면 나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선장은 선원들에게 허드슨 테일러의 말대로 하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허드슨 테일러는 그의 방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방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선장이 하는 말이 “아니 지금까지 기도하게 계셨습니까” “예”“그럼 이제 기도좀 멈춰주세요, 지금 바람이 너무 지나쳐서 야단입니다.” 테일러의 기도는 중간에 그만두어야 할 만큼의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신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은 승리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2. 기도를 돕는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세도 인간이기에 그의 손이 언제나 올려져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를 하다보니까! 점점 그의 손에 힘이 빠진 것입니다. 이 손을 내리면 전세가 다시 역전될 것을 알면서도, 그의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서 손일 내려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며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너무 힘이 들 때입니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기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모세의 손이 그랬습니다. 그의 손이 내려옵니다. 그런데, 함께 산에 올랐던 아론과, 훌이 그 장면을 목격을 합니다. 처음에는 전쟁의 장면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본 것입니다. 전세가 역전되어지고 할 때마다, 모세의 손과 연관이 된 것을 본 것입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여호수아가 수세에 밀리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다시 역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 하는 것이 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는 모세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법을 간구하기 시작했고, 모세가 손을 올리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하고, 그리고는 아론과 훌 이 앞편 에서서 모세의 팔을 하나씩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그들을 모세를 돕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 장면이 바로 장로학에서 장로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본문입니다.
장로의 역할이 바로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모세가 피곤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호와닛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모세를 돕는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돕는 자가 필요합니다. 무엇이든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하는 일 보다도 함께 하는 일을 더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자신도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로 일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해야 합니다. 구경꾼이 아니라,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손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그런 모습을 통해서 이루어져가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힘이 되어준 아론과 훌의 사역처럼, 우리들도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손길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의 사역 속에서도 독단적인 사역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주변에는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마지막부분에서 이렇게 그들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 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든 자에게 복종하라, 내가 스테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 하였음이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전16:15-18) 고 합니다. 바울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성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역을 돕는 시원케하는 성도들이 그의 주변에 있었기에 바울이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바로 이런 아론과 훌처럼, 사도들의 사역을 돕왔던 성도들처럼,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하는 마음으로 힘을 보태어줄 때, 오늘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엇던 것입니다.
3. 응답의 현장
그런데,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장에 있는 이들입니다. 모세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알고 한번의 전쟁의 경험도 없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기도의 힘만 믿고 현장에 나간 여호수아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주어도, 현장에 나가는 것은 자신입니다. 칼을 맞대야 하는 것은 자신과 이스라엘 군대였습니다. 한번의 전쟁훈련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군대, 어떻게 보면 오합지졸 같은 아말렉의 공격에 급조된 것같은 군대였습니다. 무엇을 믿고 그들이 나아갔겠습니까! 모세는 무엇을 믿고 그들을 보냈습니까?
그것은 기도의 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면 내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에스더가 왕앞에 나아갈 때에,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거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결단 속에서도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결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도는 유대인들이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는 것은 에스더 자신입니다. 얼마나 떨리는 일이요, 두려운 일입니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이요, 피하고 싶은 일 일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고 누군가를 대신 내보내고 싶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아갑니다. 무엇을 믿고요! 기도의 힘을 믿은 것입니다.
여호수아 역시 모세의 기도의 힘을 믿고 전쟁에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장 속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힘은, 기도의 능력은 기도의 응답은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을 경험하게 되고, 승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 기도의 결실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응답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응답의 현장은 고분분투하는 곳입니다. 치열한곳이고, 장소에 따라서는 위험한 곳 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의 자리이고, 눈물의 자리입니다. 수없는 실수와 실패의 자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바로 그곳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기도한 곳은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한가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곳은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을 목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 현장 속에서 찾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칼날이 아니라 그 칼날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새벽기도시간에 야고보서를 보았습니다. 그곳에 보면 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시험을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것을 기쁨으로 여길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있는데, 그것은 시험의 내용을 풀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 이후의 것을 보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찾는 자가 복이 되다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길 것을 격려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 없이 당하는 고난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그러나 기도하고 당하는 고난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그 후에 주어질 놀라운 승리의 축복을 맛볼수 있게 되어 지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기도로 승리로 이루고는 단을 쌓고는 “여호와닛시”라고 명명했습니다.
여호와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이 깃발은 승리의 깃발입니다. 이 여호와닛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있습니다. 백전백승인 것입니다. 이 놀라운 승리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모세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를 도왔던 아론과 훌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 기도만 있으면 나는 반드시 승리 할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전쟁터로 뛰어 들어간 여호수아에게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도 어떻게 보면 수많은 아말렉들이 몰려옵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해서,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우리를 향해서 방해하는 수많은 일들이 아말렉처럼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이 한주간 그런 수많은 공격을 어떻게 맞서시겠습니까! 무기를 만들고, 작전을 세우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기도를 하시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준비하느냐가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 꾾고 하늘을 향해서 두 손을 높이 드는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남편들은 사랑하는 아내가 나를 위해서 이 시간 기도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호수아처럼 응답의 현장으로 출근하시길 바랍니다. 사업하시는 분들도 만찬가지입니다. 기도로 준비했으면 그 현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절대로 기도하는 손을 가로막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론과 훌 처럼, 기도하는 손을 붙잡아 주시는 여러분들 되시 길 바랍니다. 그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는 여호와닛시의 승리의 깃발을 마음컷 휘날리게 되어 질 줄로 믿습니다. 이 한 주간 이런 여호와닛시의 영광의 깃발을 흔드는 성도들이 되시 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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