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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 요6:33-40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6:33-40 10.12.12 (대강절3째주)

 

이제 우리는 다음주면 성탄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녁에 동네를 산보하다보면 각 집의 베란다마다 멋있게 성탄을 장식한 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성탄의 츄리를 만들고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볼 때에 마음이 좋습니다. 차를 타고 어느 쇼핑가에 가도 성탄장식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느 곳에 가도 어떤 이쁜 것을 봐도 그 속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의 클레식인구가 굉장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클레식중에 상당한 부분은 성가와 관련이 있는 곡들입니다. 그전에 다이토구에 살고 있을때, 구립합창단에서 활동을 한적이 있는데, 상당한 부분들이 성가들이어서 목사로서 참 좋았습니다. 합창단 발표회를 할 때도 성가들을 발표하기 때문에 상당한 은혜들이 있었습니다. 합창단발표후에 회중들이 소감을 적은 엽서들이 도착을 해서 합창단에서 정리를 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중에는 성가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크리스찬들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가스펠을 좋아하는 동아리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넌크리스챤들입니다. 넌크리스챤들이 모여서 가스펠을 연습하고 교회에서 발표를 하는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예수는 없고 음악만 남은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작가중에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 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넌크리스챤이면서도 예수의 생애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일본기독교단에서는 그분의 그림을 책으로 발행을 했습니다.

예수없는 크리스마스, 예수없는 장식과 가스펠과 그림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때, 가슴이 아픈 부분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사실들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생각은 또 달라집니다.

이미 폼은 만들어졌습니다. 가다치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문화로 정착을 했습니다. 이제 그 속에 생명을 넣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전해주어서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동안 문화적 만족을 위해서 만들어 놓았던 모든 것은 곧바로 엄청난 복음의 확산을 가져올 중요한 역할을 할 것들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서구의 문화를 즐긴다는 단순한 차원에서의 크리스마스절기이지만,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불어넣어지게 되면 이 일본의 복음화를 위한 엄청난 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들에 대해서 지난주에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은 또한 생명으로 오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한 가지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이 들었던 시절에, 그러나 그것보다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메말라 있던 당시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말씀을 듣느라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은 식사 때를 훨씬 넘기고도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면서도 말씀을 들으려고 배고품도 참고 있는 영혼들을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한 소년이 들고 왔던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그곳에 모였던 수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야말로 열광을 했습니다. 예수님 그분에게서는 영혼의 문제만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주시는 놀라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분은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드디어 그들은 예수님을 찾기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는 더욱 그들에게서 떠나셨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도 끝내는 예수님을 찾아냅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시고 예수님께서 하신말씀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6:26-27)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썩을 양식으로 살려는 인생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이다” 라는 말씀이 현 세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한동안 한국교회에 병낮고 복 받기 위해서 교회에 몰려오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한동안 오로지 병을 낮게 하는 치유와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 교회의 기능으로 착각할 만큼 강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한국이 가난하던 시대였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배고픈 사람들을 그냥 돌려 보내지 못하셨었고, 병든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던 것을 보면 분명 예수님도 병고침과 축복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대교회를 사역할 때 역시 동일한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복음을 전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분명 복음은 그 사람들의 필요를 체워 주는 것이 복음인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곳에 머물러 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축복을 해주신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한 도구였지, 그것이 목적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가 병고침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 사는것이 목적지가 아닙니다. 분명 예수를 믿으면, 주님께 기도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병이 낮기도 하고 복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로지 그곳에만 머물러 버릴 때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로지 먹고 배불렀던 이유 그것 한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피해서 가셨던 것은 바로 예수님을 그들의 밥이나 해결해주는 분으로만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단지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은 썩어지는 것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그것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사 38:12)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백하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이 세상 어느 것도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지진이 나면 빌딩도 무너집니다. 정권도 무너집니다. 때가 되면 청춘도 내놓아야 하고 건강도 무너집니다. 명예도 빼앗깁니다. 든든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억척스레 모은 재물도 결국은 내 손에서 떠납니다. 돈을 모으는 것은 욕심일 뿐이지 누가 가져가든지 가져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벌어서 모으고 또 모았다가 사기꾼 말에 속아서 다 빼앗기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버느라고 과로해서 그만 병들어서 병원에서 다 빼앗깁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모아서 평생에 쓰지 못하고 간직했다가 죽으면 자식에게 빼앗깁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전 5:10-11).

솔로몬처럼 영광을 다 누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것이 잘 산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 사람의 헛된 욕심과 욕망은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것을 생의 가치관으로 삼고 살아가는것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썩어질 것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2. 생명의 떡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그런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32절후반부터33절을 보면 “내 아버지는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십니다. 사람들이 그러면 그떡을 달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35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시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떡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말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떡이라고 하는가, 그러면 예수를 먹으라는 것인가! 어떻게 사람을 먹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시험이 들어서 예수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52절에 보면 그들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 떠났습니다.“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먹게 하겠느냐” 영적인 것을 모르면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육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흥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의 것에 대한 이야기, 빵에 대한 이야기가 더 좋게 더 흥미있게 들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한 해안가에 가면 가을철만 되면 많은 갈매기들이 죽는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수많은 갈매기의 죽은 것을 보고서 이상해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여름철만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많은 먹이를 던져줍니다. 아주 맛있는 음식들이지요. 그런데 휴가철이 지나고 그 맛있는 음식을 던져주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나면 그들은 이제는 물고기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사람의 음식에 익숙해진 갈매기들이 그만 굶어서 죽고 만다는 것이니다. 바다에는 여전히 신선하고 맛있는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정말로 살게 하는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들만을 먹다 보면 우리 몸에 정말로 좋은 것은 나중에 먹지 못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몸은 망가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왜 떡일까요, 떡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도 베들레헴인데, 이 베들레헴이라는 말은 뜻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떡집에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떡으로 예수님은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마다 포도주와 떡을 먹습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생명의 피를 상징하고 떡은 예수님의 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도주와 떡을 먹는것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6장55,56에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를 향해서 나를 먹고 마시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지요. 어미가 알을 까고는 알에서 부화된 자기새끼들에게 자신의 살을 먹이로 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가시고기라는 물고기를 제목으로 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은 어느 독자가 쓴 독후감입니다.

"지금 10살. 3학년인 다움이는 엄마없이 아빠와 살면서 백혈병이라는 적군과 싸우고 있다. 아빠는 실력은 있으나 발휘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인이다. 언제나 다움이는 슬픔 아닌 슬픔 속에서 어쩌면 말못 할 곳에서 병과 싸우고 있는지는 모른다.

몇 개월이 지나도 백혈구 수치가 낮아질 가망이 없자 그대로 다움이는 퇴원을 하고 시골에 한 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그후...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고 있던 다움이가 병이 재발하여 병원에 가자 마침내 일본에서 골수이식이 딱 맞는 사람이 나와 골수이식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비가 없었던 다움이의 아빠는 자신의 장기를 주기로 결심하고 이식을 신청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각막이식을 하고 애꾸눈 선장으로 변하고 만다...

몇 달뒤 이식수술을 받은 다움이가 나으려고 하자 뒤이어 이제는 아빠가 간암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치료 한번 못받고 다움이 곁에 있은 탓에 이미 늦고 만 뒤였다...

프랑스에서 엄마가 오고 다움이를 이혼한 엄마에게 주기로 한다움이 아빠는 마지막까지 다움이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프랑스로 보내고 만다.

그뒤... 병세가 더욱 악화된 아빠는 결국 시골 한 폐교에서 아름다웠던 삶의 막을 내리고 만다. 프랑스에 있던 다움이는 아빠가 하늘나라로 간지도 모르고 늘 아빠를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남긴 말...

"사람은 말이야..... 아이를 남겨놓은 이상 죽어도 아주 죽는게 아니래... "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꼭 그러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십자가 상에서 다 내어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주님은 성만찬을 통해서 자신을 살과 피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설명을 해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하시면서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모든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시기를 53장:4~5"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면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주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평화와 고침을 주시려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썩어질 것 밖에 먹을수 없었던 우리에게 그래서 썩어져 죽을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수많은 병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어가던 사람, 이미 죽었던 나사로에게까지도 새로운 생명을 허락해주셨고, 그들에게 살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하시면서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하셨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이 생명의 떡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른 말로는 “영생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먹을 양식은 바로 이 성경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한줄 한줄 나의 말씀으로 읽어갈 때에 그리고 그 말씀들을 한마디 한마디 들어갈 때에, 우리는 영생의 양식을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의 양식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의 생을 복되고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많이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체질이 만들어지는 것 처럼, 우리는 영의 말씀을 많이 먹으면 우리의 영적 체질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말씀을 많이 먹어서 여러분의 영적 체질이 예수님의 체질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중심의 체질, 교회중심의 체질, 순종중심의 체질, 아멘의 체질, 봉사와 섬김의 체질, 전도의 체질이 되어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는 성탄의 계절에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기쁨으로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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